고등학교 2학년 딸과 마주치는 게 두려운 엄마가 있어요. 엄마는 이혼을 하고 혼자서 두 딸을 키우고 있었죠. 아빠는 매 주말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착하고 똑똑해서 엄마의 자랑이었던 딸. 고맙게도 중학교까지 스스로 공부하고 스마트폰도 적절히 관리해가면서 큰 말썽 없이 지낸 딸이 스스로 자립형 사립학교를 가겠다고 했고, 딸의 희망대로 자사고에 합격했어요. 딸은 늘 밝은 성격에 춤도 잘 추고 엉뚱한 기질도 많아 학교에서 금세 인기를 얻었어요. 딸은 처음엔 학교가 너무 좋다고 하더니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학교가 힘들다고 해요. 한 달에 한번 주말에 잠깐 집에 올 수 있는데 돌아갈 때마다 울기도 하고 힘들어해요.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두 주간 집에 머물더니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해요. 이유는 학교의 아이들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엄마는 흔히 겪는 아이들 문제로 보고 그래도 한 학년은 마쳐보고 결정하자고 하면서 학교로 돌려보냈어요. 2학기가 한 달쯤 지나고 딸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딸이 평소에도 자주 과호흡이 와서 양호실에 자주 머물다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과호흡이 심하게 와서 부모님이 오셔서 데려가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집에 데려와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과호흡이 자주 왔었는데,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 사이 아빠는 부모상담을 받으면서 딸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상의했어요. 딸의 심리검사 결과 우울증과 불안감이 매우 높은 상태로 나타났어요. 아빠는 심리상담을 통해 딸의 현재 상태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딸과 상의한 후 엄마를 설득시켜서 신속히 인근 학교로 전학 수속을 마쳤어요. 아빠는 주말마다 딸과 동행하여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의 우울증 치료를 받게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은 식이장애(거식증) 증상과 우울증 증상이 더 심해져, 거의 밥을 먹지 못했어요. 음식을 삼키는 것도 소화시키는 것도 힘들어했고,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지요. 딸은 수시로 자퇴하겠다, 내신은 포기하겠다. 아파서 학교 안 가겠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불안감에 딸과 싸웠어요. 엄마는 9개월의 시간 동안 딸을 살려보려고 성질도 죽이고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애쓰다가 한 번씩 딸과 부딪치기를 반복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부모는 실망하고 지쳐가고 불안해져요.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딸은 많은 호전이 있었어요. 딸의 식이장애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고, 표정도 밝아졌죠. 엄마와의 싸움의 빈도나 강도, 지속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딸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다만, 딸의 상황에서 보면 상담과 우울증 약의 효과로 내면의 감정 기복은 줄었으나, 입시를 앞둔 학생이라는 현실적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요.
딸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입시경쟁의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어요. 딸이 상담과정에서 부모의 이혼에 대한 원망과 엄마와 싸울 때마다 느끼는 미움과 사랑의 양가감정을 많이 토로했지만, 딸의 증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입시 경쟁이라는 현실과 딸의 응석을 마음껏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의 경직된 태도,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이혼한 아빠 등의 가족 현실이 있어요.
딸의 식이장애와 우울증이 오래가고 치료가 더딘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춘기 딸의 꿈과 소망, 이상과 현실, 불안과 걱정을 마음껏 담아줄 가족이라는 그릇이 넓고 단단하지 못해서예요. 이혼한 부모의 좁은 그릇이 딸의 불안과 우울을 만날 때마다 담담히 받아주지 못하고 딸의 불안을 증폭시켜버리는 결과를 낳았어요. 자기중심적인 사춘기 사고의 특징이 딸에게 나타나자 불안한 부모는 딸을 비난하고 공격하여 딸의 생각을 품어주기보다 고치려 해요. 이 반복되는 부딪침에서 딸은 아이처럼 투정도 부리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부모로부터 자율권을 획득하려 하고 있어요.
부모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침에 힘들다고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딸에게 "그럼 가지 마!"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이럴 때 부모의 담아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통통 튀는 공 같은 자녀가 부모라는 넓고 큰 그릇 속에서 마음껏 통통 튀도록 지켜주는 거예요. 이럴 때 자녀의 감정을 코칭해주어야 해요. 감정코칭의 원칙은 간단해요. "자녀의 감정은 수용하고, 행동은 제한하라"예요. 몸이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못 가겠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부모가 해야 할 행동은 "많이 아파서 힘들구나!"라고 딸의 말을 그대로 수용해주세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를 찬찬히 묻고 그런 상태면 학교 가기 싫겠다고 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담아주세요. 그런 후에 행동은 제한하세요. "몸이 너무 아픈 것은 알겠는데, 학교를 너무 빠져서 일단 학교에 등교하고 한두 시간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하면 어떨까?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줄게" 이런 식으로 감정을 먼저 받아주고, 행동의 원칙은 그다음에 말해요. 딸이 그래도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하면 두 번 세 번 이 과정을 반복해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부모는 딸에 대한 표정과 음색, 말투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야 해요. 부모도 어린 시절에 경험해보았지만 아이의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 마음은 수용해주되, 일관된 행동의 원칙을 지켜가는 태도가 훈육의 기본이에요.
또한 부모는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앞으로도 무한정 반복될 거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야 해요. 지금이 사춘기 시절이기에 겪는 어려움이에요. 아이들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가고, 사고와 감정과 행동이 변해가요. 사춘기 시기에 자녀의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수용해주세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녀의 응석을 허락해주세요.
그전에 보지 못했던 자녀의 부정적인 모습을 마주하면 부모는 당황하게 돼요. 당황한 부모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녀에게 잘못된 훈육방법을 쓰기 쉬워요. 사춘기 자녀의 부정적인 언행을 볼 때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이 시기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담아주면 신뢰 로운 성인으로 자라게 돼요.